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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가 군대를 가면 벌어지는 일 (+ 해결책)

골방이야기꾼 2023. 2.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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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가 군대를 가면 벌어지는 일 (+ 해결책)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판초 우의 무늬

1. 주의사항

지금부터 이야기해드릴 것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의 경우와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글을 써본다.

2. 필자가 겪었던 고충

당시 필자는 본인이 성인 ADHD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군대를 오니, 참으로 고역이었다. 아마 함께 복무하는 동기 녀석들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더 잘해주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1) 제게 뭘 시키셨죠?

네? 뭐라고요?

자대 배치 후 가장 먼저 느꼈던 문제점이다.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옆에서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겨우 집중력을 발휘하여 선임의 지시를 이해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걸 까먹어버릴 때가 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 100%다.

결국 재차 질문하거나, 혹은 모르는 채로 눈치껏 과업을 수행하게 되는데 둘 다 폐급 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꼴에 자존심이 강해서 폐급 소리 안 들으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결국 폐급이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한창 임병장, 김일병 사건 등등 군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절이라 몰매를 맞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2) 제 총기함 열쇠가 어디에 있죠?

출처: 픽사베이

앞서 언급했지만, 정말 많이 까먹게 된다. 성인 ADHD는 작업기억력에 큰 문제를 갖게 되기에 사소한 실수가 잦은데, 그 덕에 발생한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단 한번도 화를 안 냈던 행정병 선임이 나에게만큼은 처음으로 화를 낼 정도였으니. 그래도 말년에는 친해지긴 했다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때로는 무서운 선임이 윽박지르는 거보다 이쪽이 더 무서운 법이다.

아무튼, 행정병 선임이 내게 화를 낸 계기가 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전투준비태세 훈련이 있는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빠른 시간 내에 작전을 수행할 태세를 갖추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 훈련을 하던 와중, 까먹고 총기함 열쇠를 몸에 지닌 상태에서 작전 지역으로 가버렸다. 행정병 입장에서는 수량을 전부 파악해야 하는데 하나가 비어버리니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실수가 있지만, 너무 많이 풀어놓으면 누군가가 필자를 알아볼 거 같아서 여기까지만 하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미안하네...

3) 왜 이렇게 나대는 걸까?

제발 좀 여기 가만히 있어!!!

ADHD의 특징으로 과잉행동이 있다. 보통 성인이 되면 교육, 환경, 성장 등의 요소로 인해 ADHD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린이처럼 과잉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어째서인지 필자는 이 부분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문제아 그 자체였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점차 '조용한 ADHD'로 발전되었고, 그 탓에 교정이 잘 안 되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아무튼 군대에 오니, 이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필자도 모르게 누가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한다던가, 쓸데없이 4차원 같은 말을 한다던가... 그래서 처음에는 선임이 날 엄청 싫어했다. 비단 ADHD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우울한 생김새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우울한 성격 역시 ADHD의 동반 질환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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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 어떻게 하지?

혹시나 군 복무를 고려하기 전에 성인 ADHD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여러분은 본인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주어졌다. 필자처럼 20대 후반에 ADHD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40대가 되어서야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와 비교하면 여러분은 정말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러니 '에이, 그래도 더 일찍 발견했어야 하는데.' 이딴 소리 하지말고 지금이라도 광명을 찾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곧 군대를 가야 한다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신다면, 필자가 생각하는 방법이 딱 2가지 있다.

1) 심리검사를 솔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

여러분이 성인 ADHD를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군 복무가 힘들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군 복무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성인이 된다.' 이런 소리 듣고 필자처럼 최전방 지원하면 피 본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한 가득 담은 채로 군대에 간다는 것은, 마치 입 전체에 염증이 돋아난 상황에서 알보칠로 가글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겠지만, 또다른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며 무엇보다 (필자 입장에서는) 너무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뺄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고 본다. 군대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나 요령 등은 사회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면 능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도 하니까.

2)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

알보칠 가글을 원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결국 군대를 가야 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너무 낙심하지는 말자. 여기,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성인 ADHD는 군대를 가야만 하는 걸까? (본인 경험담 및 각종 논문 등)

1. ADHD와 군대 필자는 오래 전 군 복무를 마치고 현재는 취준생(백수)으로 자리매김한 평범한 블로거이자, 동시에 성인 ADHD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에는 ADHD 환자가 군 복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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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 따르면, 군대는 ADHD인에게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준다. 이를테면,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 등이다. 보통 ADHD는 규칙적인 삶을 살길 힘들어하는데, 국가에서 강제로 교정해주니 이것도 나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게다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조직 역량...이라는 것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 같은 걸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필자는 군 복무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Best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입장이라면 군대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추억 보정이 심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으나, 분명 군 복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실제로 존재한다. 가령 필자의 경우 폐급 소리를 안 들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고, 상병 시절 분대장이 되었을 때에도 '저 녀석이 분대장이라고? 저 분대는 망하겠구만.'이라며 누군가가 얘기하길래, 그게 또 자존심 상해서 열심히 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땐 진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물론 이렇게 해도 폐급 소리를 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군대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당시의 교훈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여러분이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딱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 한다.

  •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 선임이나 동기가 뭐라하던 간에 신경쓰지 말고, 본인의 성장만 생각해보자.
  •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 것
    - 필자처럼 너무 나대지 말고, 기본만 하자는 생각으로 복무하는 게 Best다. 필자의 경우 기본도 힘들었다...
  • 전역 후에도 군 생활의 이점을 적용할 것
    - 특히 여러분은 부디 규칙적인 스케쥴과 운동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4. 마치며

지구상 유이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군 복무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딴 소리는 여러분에게 해주지 못하겠으나 신이 레몬을 주면 우리는 레모네이드라도 만들어야 한다. 어쨌거나 이 글이 여러분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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