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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ADHD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알려야 할까?

골방이야기꾼 2022. 8. 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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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일단 개인 경험과 의견이 다분히 섞인 게시물임을 밝힌다.

1. 결론부터 바로

'알리는 건 좋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여러분의 마음 역시 이해하고 있다. 본인이 ADHD라는 진단을 받았으니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답답하겠지. 또는 부모와 의논하고 싶지만,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 ADHD 선언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을 터.

그러나 ADHD에 관하여 무턱대고 말하기 전에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필자가 부모에게 ADHD임을 밝혔던 경험과 개인 의견을 함께 말해주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판단은 본인 몫이며, 순전히 개인 의견이라는 걸 밝힌다.

1) 필자의 경우

본래 필자는 본인이 성인 ADHD라는 사실을 절대 이야기해주지 않으려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1. 주변 환경 2. 부모의 상태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공기업을 준비하던 와중이었고 연이은 실패로 무척이나 우울했다. 게다가 내 부모님도 그리 섬세하지 않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평소 정신병을 '나약해서 생기는 병'이라 생각하셨고, 굳이 이런 얘기를 해봐야 핀잔만 들을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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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국 일이 터졌다. 공기업 관련해서 얘기가 나왔는데, 내 부모님이 내게 넌지시 물었다. '도대체 언제쯤 취직하겠냐?' 그 말에, 필자는 그만 정신을 잃고 폭발하였다. 만약 공기업을 준비하지 않았다던가, 아직 대학생의 신분이었다면 넘어갔을 텐데, 당시 필자는 코너에 몰린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들었으니 필자는 어째서인지 화가 났다. 어쩌면 필자가 그동안 쌓인게 많았던 걸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간다. 여하튼 그 과정에서 필자는 본인의 상태, 즉 필자가 성인 ADHD 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걸 폭로해버렸다.

옛날 사람이던 내 부모님은 제 자식이 정신과를 간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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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기서 말이 안 통한다면 필자는 짐을 싸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분 다 눈물을 보이셨다. 분명히 지금 상황에선 혼내고 윽박질러야 하는데. 그랬다. 내 부모님은 과거의 부모님이 아니었던 거다. 과거의 부모님은 무엇이든 다 때려부술 수 있는 존재였는데, 지금의 부모님은 그저 노인일 뿐이다.

이게 참 슬프다. 그렇게 날 못살게 굴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만 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쨌든, 내 부모님은 과거의 부모님과 약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세월에 따라, 자기가 살아온 길에 따라 부분적으로나마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과거의 부모, 엄하고 윽박지르는 부모가 남아 여전히 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자식에게는 어릴 적 기억이 오래 남는 법이니, 자식을 가졌다면 자식에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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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필자가 부모님을 보는 시선과 부모님이 필자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은 필자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상처와 굴곡을 이해했고, 필자는 부모님이 당시 상황에서 필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이유를 납득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서로가 남보다 못한 사이로 남아버리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필자가 조금만 더 섬세히 말했다면, 적절한 시기에 ADHD임을 밝혔다면, 서로 얼굴 붉히고 감정 긁으며 싸우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여기까지가 필자의 경험담이었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말하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ADHD의 특성 중 하나로는 '섣부른 행동'이다. 그 섣부른 행동이 경우에 따라선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본인이 ADHD라는 걸 밝히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자.

2) 왜 ADHD에 관하여 말하려 하나?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는 '배려'일 것이다. 미리 취, 창업을 해서 독립을 했거나, 노량진, 유학, 군대 등 부모와 떨어져 있다면 굳이 얘기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애초에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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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모와 같이 살아야 한다면, 보통은 서로 간의 배려가 절실한 상황이다. 필자의 경우 공기업을 준비할 때, 보통은 독서실에 있었기 때문에 밤 늦게, 혹은 저녁밥을 먹을 때만 부모님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찌보면 가끔 돈이나 벌고 얹혀사는 주제에 이런 식으로 불만을 갖는 것도 기만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정말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특히 필자는 본인이 ADHD라는 걸 알고 있는데, 부모님이 필자의 ADHD적인 특성에 대해 말할 때 그 때가 제일 불편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지금 상황이 불편하다면, 본인이 ADHD임을 밝힌 다음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서로 간의 관계에 더 좋을 수 있다.

3)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나?

1번은 어떻게든 해결했다 치자. 그럼 이제 2번이 중요하다. 사람은 말하는 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ADHD들은 이게 가끔 잘 안 된다. 말을 필터링 없이 할 때도 있고, 별 생각없이 행동부터 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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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모도 결국은 사람이다. 이쪽에서 욕을 하면 저쪽에서도 욕을 하는 게 사람의 기본 심리 아닌가.

처음부터 감정을 앞세워 말해버리면, 상황을 좋게 개선해보려는 일말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미리 '이렇게 말해야겠다.' 생각한 상태에서 ADHD에 관하여 의논해보자.

필자처럼 그냥 막 지르지 말고...

3) 만약 대화가 성립되지 않으면, 뭘 할 것인가?

당신의 부모가 개차반이 아닌 이상에야, 그래도 부모니까 뭐라도 도와주려 한다. 이러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본인이 진지하게 얘기를 하는데도 'ADHD 핑계대지 마라' '어쩌라는 거냐' '그거 다 게을러서 생기는 병 아니냐' 이렇게 나오는 부모가 있다면, 정말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거지만...... '손절'을 진지하게 고려해도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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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여러분이 부모와 대화를 하려는 이유는, 점점 악화되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 쪽에서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굳이 본인이 피해를 볼 이유는 하등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본인이 부모로써 대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선언을 한 셈이다. 결국 본인도 늙을 테고, 자식은 점점 커질 텐데 이런 식으로 자식의 문제를 외면해놓고 나중에 와서 부양해주길 바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둑 심보 아닌가. (물론 약간 본인에게 기분나쁜 언행을 했단 이유로 무턱대고 홧김에 손절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ADHD가 홧김에 인생 잘 조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감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 말고 일단 본인을 위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즉, '부모가 ADHD에 관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라고 판단한 이상, 본인의 인생은 결국 본인 책임이니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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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본인은 자기 자신이 ADHD인 것 같은데 아직 학생이라 검사받을 돈도 없고 아무리 부모님을 붙잡고 검사를 시켜달라 해도 이를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믿을 만한 주변 어른 (친척, 선생님) 에게 대신 부모님을 설득해달라거나 혹은 얼굴에 철판 깔고 돈 좀 빌려달라 부탁해야하고, 최악의 경우 본인이 어떻게든 돈을 벌던가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네, 이렇게 살아야겠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얘기 좀 들어봐라. ADHD라는 놈은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면 본인의 인생을 갉아먹는 암세포가 된다. 그러므로 빠른 대처가 절실하다. 본인을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을 본인이 필사적으로 마련해보자.

3. 마치며

지금까지 ADHD에 관하여 부모와 말해야 할까? 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봤다. 필자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ADHD라는 놈은 관리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거나, 재난이 된다. 부디 여러분은 필자처럼 나이 먹고도 이러지 말고, 하루 빨리 더 나은 길을 찾아서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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