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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빨리 ADHD 진단을 받으시게! (약의 효능, CAT 검사, 삶의 변화 등등)

골방이야기꾼 2022. 8. 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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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1. 처음 약을 먹었을 때

쌀쌀한 2월. 취업 공부를 하기 위해 독서실에 앉은 다음, 처음으로 ADHD 약을 먹었다.

당시 먹었던 약은 메디키넷 20mg.
아직도 그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에는 약이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 이전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슬슬 약효가 돌자, 머릿속에서 들던 잡생각이 서서히 옅어졌다. 부정적인 생각, 과거의 일, 혹은 망상.

약을 먹기 전에는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방영되었다. 마치 끄고 싶어도 끌 수 없는 TV처럼. 그러나 약을 먹고 나면, TV를 완전히 끌 수는 없더라도 볼륨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1시간 30분 동안 온전히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부를 끝마치고 난 후, 잠깐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세 가지 생각을 했다.

  • 남들도 이런 식으로 살아왔던 거구나.
  •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이 너무 부끄럽다.
  • 이걸 왜 이제야 먹게 된 걸까?

서른 즈음에 와서야, 비로소 내 인생을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2. 정신과에 대한 인식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을 땐 많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정신과라고 하면 좋은 인상은 아니니까.

자, 잠깐만요.

물론 위 이미지처럼 다짜고짜 전기충격을 갈기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데도 사람들의 시선,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뭔가 저 사람은 하자가 있구나. 그래서 정신과에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필자 역시 이 점이 우려되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보통은 구시대적인 사람,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병원을 위험하다 여기니까.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신과에 안 가고 버티는 사람은 어떤가? 과연 정신과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현명한가?

심지어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병? 그거 사람이 나태해서 걸리는 병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필자가 보기에 인생은 순환의 연속이다. 따라서 함부로 남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왜 이 사람이 나태해졌는가? 무엇이 사람을 나태하게 만드는가?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단면만 보고 사람을 단정짓는다. 이건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형제, 심지어는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확 씨...

그러므로 혹여나 누군가가 당신을 정신과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쳐다보면? 사뿐히 무시해도 좋다.

아니면 대놓고 말해라. 병원비 대신 내줄거냐고.


본인의 문제는 본인이 잘 안다.
그리고 본인이 정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한번 가보는 거다.
비록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더라도 상관없다. 본인의 삶을 바꾸려는 그 행동 자체가 소중하니까.

+ 혹시나 기록이 남아 취업 등 불이익이 생기는 일이 걱정되어 정신과에 가고 싶지 않나? 그럼 본인이 마음의 병을 갖고 있는 상태라면 취업 준비를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3. CAT 검사

CAT 검사는 생각보다 비싸다. 비급여이기 때문에, 기본 진료비 이외에도 10만원이 추가로 청구된다. 그리고 CAT 검사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청각 검사도 있고, 시각 검사도 있다. 하나를 할 때마다 같은 비용이 연달아 청구된다.

필자는 청각 검사와 시각 검사를 해서 총 20만원 + a를 지불했다. 처음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왜냐하면 CAT 검사라는 게 정말 별게 아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고, 전문적인 검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미니게임 같은 느낌이다.

와우! 내가 ADHD라니!

약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어느 쪽에서 소리가 나는지, 어떤 도형이 서로 일치한지 빨리 반응하는 식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내 기억상으론 15분이었던 것 같다.) 검사를 수행하고 나면, 결과가 곧 나온다.

필자는 당시 ADHD 진단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오답을 내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은 의외로 쉽게 걸러진다. (겉보기와 달리 의외로 정확하다.)

CAT 검사 결과. 필자의 과잉행동 및 집중력 부분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이렇게 ADHD 판정을 받았고, 그날 바로 약을 받았다.

4.약의 효능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ADHD약의 성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메틸페니데이트, 하나는 아토목세틴이다. 필자가 처음 먹은 메디키넷은 메틸페니데이트. 현재는 아토목세틴 계열인 스트라테라를 먹는다.

따라서 메틸페니데이트와 아토목세틴.
두 성분을 모두 섭취한 경험이 있다.

1) 메틸페니데이트

이 녀석은 각성제다. 마치 레드불이나 투 샷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심장이 뛴다. 그만큼 머리 회전도 빨라진다.

보통 ADHD는 뇌의 선천적인 문제로 도파민이 부족한데, 이 적은 양의 도파민마저 재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여 각성 효과를 이끌어낸다.

여기서부터는 필자 개인의 경험담이다.

필자는 메디키넷이라는 약을 먹었는데, 이건 지속효과가 8시간이다. 처음 1시간은 심장이 마구 뛰고 무슨 일이든 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상태가 된다. 그러다 3~4시간이 지나면 약간 잠잠해진다. 약을 먹기 전처럼 잡생각도 난다.

그 다음 2차 피크가 찾아온다. 이건 1차 피크보다는 좀 덜한데 (물론 개인차가 있다) 그래도 무언가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성격의 변화도 있다.
우선 부정적인 생각이 잦아든다.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고, 느긋해진다. 물론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진 않는다. 과거에는 "아, 내 인생은 망했어." 라면, 지금은 "아! 내 인생은 망했다! 히힛!"과 같은 느낌이다.

인생이 망한 건 똑같지만, 적어도 후자는 부정적인 사이클에 잠식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메디키넷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막상 이렇게만 들으면 좋아보이지만, 사실은 부작용이 있다. 우선 필자의 경우 불면증이 찾아왔다. 더욱이 입맛이 없어지고, 성욕이 저하되었다. 입맛이 없어지고 성욕이 저하되는 건 필자에게 좋은 부작용이었다.

필자는 살집이 있는 체형인 데다가 성욕도 남들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식욕과 성욕, 이 둘을 억제할 수 있다? 오히려 좋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텐데, 가끔 이 놈이 도를 넘을 때가 있다. 식욕이 돋지 않는 걸 떠나서 아예 먹으면 구역질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잠이 오질 않으니 수면 사이클이 점점 뒤로 밀리게되는 불상사가 생겨난다. 심장 박동 역시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가끔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무섭기도 했다.

이렇듯 긍정적인 면에 비해 부정적인 면이 크다보니, 결국 필자는 약을 바꾸게 되었다.

2) 아토목세틴

이것이 현재 내가 먹고 있는 약이다. 메틸페니데이트의 여러 부작용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서 아토목세틴을 권유하였다. 지금은 약을 복용한 지 어인 3주차.

이 녀석은 노르에피네프린만 재흡수를 방지한다. 어째서인지 각성효과를 이끌어내지도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처음에는 효과가 없다고 느꼈다. 오히려 갑작스레 찾아온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아토목세틴의 부작용 중에 '자살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 약의 진가는 복용 후 2주가 지나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람이 침착해진다. 말수도 없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덤덤해지며, 그만큼 행동력이 늘어난다. 메틸페니데이트가 '뭐라도 해야 해! 아자 아자!'
이런 느낌이라면,
아토목세틴은 '일단 이걸 해야겠다.' 라는 식의 차분한 느낌이다.

대신에 효과는 메틸페니데이트보다 떨어진다. 아무래도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둘 다 재흡수를 막는 쪽이 노르에피네프린만 보존하는 쪽보단 효과적일 테니까.

물론 그만큼 부작용은 적다. 과거와 달리 일상생활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따라서 필자는 현재 생활에 나름 만족한다.

이렇듯 본인이 약을 먹기로 정해졌다면 어떤 약이 본인에게 맞는지 잘 찾아봐야 한다.

5. ADHD의 위험성

아직 대한민국에서 ADHD는 보편적이지 않다.
CAT 검사가 비급여인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사람들은 ADHD와 게으름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ADHD는 특히 더 위험한 병이며, 빨리 진단을 받는 게 중요하다. 만약 ADHD를 가진 부모가 ADHD를 가진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
(ADHD는 유전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부모가 성숙하다면 아이는 ADHD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성숙하지 못하다면, 아이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렇게 아이가 ADHD를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그 이후 발생할 일은 누구 책임인가?

인생...

필자는 ADHD 특유의 성격 탓 인간관계도 많이 망쳐봤고 인생도 많이 낭비해봤다. (지금도 낭비중 ^^)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지만 대부분 무의미했다. 그 어떤 노력도 병원에 받은 ADHD 진단만큼 효과적이진 않았다.
(그나마 손에 꼽자면 운동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건물을 짓는 것에 비유를 들자면 ADHD를 가진 사람이 의지만으로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고 하는 것은 지반 자체가 부실한데, 자꾸 건설사를 몰아붙이는 것과 같다.

즉,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계속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듯 ADHD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일 수 있다.

6. 좌절하진 말자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진 말자. ADHD 탓만 하고 살진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ADHD라서 뭘 못한다.' '내가 ADHD라서 이렇구나'라며 행동 대신 ADHD탓을 하는 건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

가끔 ADHD 생각도 나고 부모님 원망도 들고 하곘지. 다 이해한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을 책임지는 건 나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이게 현실인 걸 어쩌겠나. 심지어 ADHD라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믿기진 않겠지만.

가령 필자의 경우, 소설도 쓰고 음악도 작곡하며 본인의 역경을 나름대로 극복했다. (ADHD는 예술가, 과학자 기질이 다분하다.)

비록 이것이 내게 돈벌이를 제공해주지 못하지만, ADHD 덕분에 꽤 즐겁고 독특한 취미를 가진 셈이다. 그러니 본인이 설령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더라도 너무 상심하진 말자. 당신의 인생은 ADHD 진단을 받기 전, 그리고 그 이후로 나뉘게 된다.

7. 마치며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질문은 언제든 환영한다. 그리고 ADHD가 의심되면 아래 자가진단표를 작성해보자.

출처: https://m.sportschosun.com/news.htm id=201608300100295860022527&ServiceDate=20160829

위 체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보고 ADHD라는 판단이 선다면 주저없이 병원에 가자.

본인의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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